상대 팀 선수 달랬다고 아이 인스타에 ‘고나리질’…이틀 만에 또 불거진 ‘사이버 폭력’, SNS는 ‘감정 쓰레기통’이 아니다

[SPORTALKOREA] 한휘 기자= 선수의 SNS는 ‘감정 쓰레기통’이 아니다. 정당한 비판이라면 모를까, 그저 화풀이 대상으로 삼는 것은 ‘사이버 폭력’이다.
지난 17일, 한화 이글스 내야수 이도윤의 가족 SNS 계정에 ‘스토리’가 업로드됐다. 팬으로 추정되는 사람이 보낸 다이렉트 메시지(DM)를 캡처해 “애들 계정에까지 찾아와서 이런 말 하고 싶으신가”라는 말을 남겼다.

해당 팬은 16일 NC 다이노스와의 원정 경기 상황을 문제 삼았다. 4회 말 2사 후 NC 최정원의 타구가 한화 선발 투수 문동주의 오른쪽 팔뚝을 직격했다. 문동주는 심한 고통을 호소하며 쓰러졌고, 결국 마운드를 내려갔다.
추후 검진 결과 뼈에 이상이 없는 것으로 드러나 한숨 돌렸지만, 상황 발생 당시에는 경기장에 있던 모두의 가슴을 철렁하게 했다. 최정원도 1루를 밟은 뒤 경기가 잠시 중단되자 마운드로 향해 문동주를 걱정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때 2루수로 뛰고 있던 이도윤도 문동주의 상태를 살피기 위해 마운드로 향했다. 이때 최정원이 다가오자 등을 토닥이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혔다. 해당 팬은 이를 두고 “상대팀한테 웃지 말고 우리 팀 분위기부터 생각하라”라고 말한 것이다.

말도 안 되는 비난이다. 이도윤이 팀을 생각하지 않았다는 하등의 근거가 없다. 애초부터 문동주가 쓰러지자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마운드로 향하고 있었던 이도윤이다.
최정원을 다독인 것도 전혀 문제 될 일이 아니다. 타구에 맞은 문동주의 몸 상태도 문제지만, 그런 타구를 날린 최정원 역시 의도치 않게 누군가를 다치게 했다는 점에서 큰 충격을 입고 죄책감에 시달릴 수도 있었다. 그런 최정원의 등을 토닥이는 것은 선배 야구 선수로서, 혹은 그 이전에 한 명의 사람으로서 충분히 나올 수 있는 행동이었다.
해당 팬은 타당한 근거도 없이, 이도윤의 행동이 본인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굳이 아이 계정까지 찾아가 비난을 퍼부었다. 요즘 표현을 빌려 쓰자면, ‘억까’를 한 셈이다. 이런 행태를 보이는 인물을 과연 ‘팬’이라고 부를 수 있는지조차도 의문이다.

선수의 SNS를 대상으로 한 ‘사이버 폭력’ 문제는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다. 불과 며칠 전 삼성 라이온즈 르윈 디아즈가 SNS를 통해 가족들이 괴롭힘에 시달리고 있다고 호소한 바 있다.
디아즈는 “항상 여러분 모두에게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가족에게 해를 끼치려는 행동은 용납할 수 없다”라며 “아내를 해치겠다는 협박을 받았고, 반려견들을 독살할 것이라는 위협을 받았다. 더 이상 참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5월에는 두산 베어스 조수행이 ‘본헤드 플레이’로 인해 팬들의 비판을 받았다. 그런데 가족들을 향한 도를 넘은 메시지도 함께 날아들었다. 조수행은 SNS에 “제 욕하는 건 괜찮은데 가족 욕은 안 하는 게 좋을 것 같다. 저도 사람이라 참는 데 한계가 있다”라고 말했다.

물론 프로 선수라는 직업적 특성상 비판은 피할 수 없다. 부진한 경기력, 혹은 치명적인 실수를 범하면 팬들의 날 선 반응이 따라오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비판’과 ‘비난’은 다르다. SNS는 ‘감정 쓰레기통’이 아니다. 근거를 생략하고 무작정 악담을 퍼붓거나, 근거가 있더라도 도를 넘은 욕설과 협박 등을 자행하는 것은 비판의 범주를 넘은 ‘인신공격’에 해당한다.
이런 메시지를 DM을 통해 선수에게 직접 보내는 것은 ‘사이버 폭력’이다. 악성 팬이 극히 소수라고는 하지만, 그 소수의 악행만으로도 선수와 가족은 정신적 충격을 받을 수 있다.
야구의 인기가 늘어나면서 선수와 가족들을 향해 사이버 폭력을 퍼붓는 사례도 점점 느는 추세다. 팬덤의 ‘자정 작용’도 중요하겠지만, KBO나 선수협회 차원에서 대응할 필요성도 제기되고 있다.

사진=한화 이글스 제공, 이도윤 가족 인스타그램 스토리 캡처, 유튜브 'TVING SPORTS' 하이라이트 캡처, 삼성 라이온즈, 두산 베어스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