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연합뉴스) 김경윤 기자 = 결국 김혜성(26)은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의 '강속구 벽'을 넘지 못했다.
김혜성은 미국 진출을 앞두고 강속구에 대처하기 위해 타격폼을 바꾸는 등 안간힘을 썼지만, 한계를 노출하며 마이너리그로 떨어졌다.
그는 2025 MLB 시범경기에서 타율 0.207(29타수 6안타), 1홈런, 3타점의 초라한 성적을 남기고 12일(한국시간)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산하 마이너리그 트리플A 팀인 오클라호마시티 코메츠로 내려갔다.
김혜성은 마이너리그에서 강속구와 싸움을 다시 시작할 예정이다.
◇ 빠른 공에 속수무책…KBO리그 3할 타자의 힘겨운 도전
김혜성은 KBO리그 키움 히어로즈 소속 시절, 리그의 대표적인 교타자였다. 2021년부터 지난해까지 매년 3할대 타율을 기록했다.
2023년 타율 0.335, 미국 진출 직전인 2024년엔 타율 0.326의 성적을 냈다.
김혜성은 미국 스카우트들에게도 높은 평가를 받았다.
지난 1월엔 명문 구단 다저스와 3+2년 최대 2천200만달러(약 320억원), 보장계약 3년 총액 1천250만달러(182억원)에 MLB 계약을 했다.
그러나 김혜성은 MLB 시범경기에서 한계를 노출했다.
그는 구단 조언에 따라 타격폼을 수정하며 적응에 나섰지만, 결과는 아쉬웠다.
2월 한 달간 치른 6차례 시범경기에서 14타수 1안타 타율 0.071에 그쳤다.
다저스 구단 내부에선 김혜성을 마이너리그로 보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타격 훈련이 더 필요하다는 지적이었다.
김혜성은 KBO리그에서 한 번도 뛰어보지 않은 중견수 수비를 보기도 했다. 붙박이 주전을 노리기에는 다저스의 선수 층이 워낙 두꺼웠고 여러 포지션에 출전하는 유틸리티가 살 길이었다.
슈퍼스타들이 차고 넘치는 다저스는 김혜성이 적응할 시간을 주지 않았다.
다저스의 개막전 일정도 김혜성에겐 불리했다.
다저스는 다른 팀들이 시범경기를 펼칠 때 일본 도쿄로 이동해 오는 18∼19일 정규리그 개막전을 먼저 치러야 했고, 이에 따라 12일 김혜성에게 마이너리그행을 통보했다.
◇ 희망은 있다…3월 이후 보인 적응의 '증거들'
김혜성은 마이너리그에서 데뷔 시즌을 시작하지만, 좌절할 필요는 없다.
어엿한 빅리거로 성장한 김하성(탬파베이 레이스)과 이정후(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도 첫해엔 적응에 진땀을 흘렸다.
김하성은 데뷔 첫해인 2021년 타율 0.202에 그쳤으나 2022년 타율 0.251로 반등했고, 2023년엔 0.260을 기록하며 주전급 선수로 성장했다.
이정후는 2024시즌 타율 0.262를 기록하다 부상으로 시즌을 일찍 접었다. 수술 후 재활을 착실히 거친 뒤 올해 스프링캠프에선 11일 현재 타율 0.346으로 활약하고 있다.
김혜성도 빅리그 데뷔를 준비하던 시범경기에서 고전했다.
그는 이달 초까지 MLB 강속구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했다.
그는 2월 24일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전에서 가운데 몰린 156㎞ 강속구를 받아쳐 첫 안타를 기록했지만, 이 안타는 정타가 아니었다.
범타에 가까운 1루 쪽 땅볼이었고, 김혜성은 빠른 발로 내야 안타를 만들었다.
이달 2일 샌프란시스코전에서 나온 홈런도 한가운데 몰린 시속 147㎞의 '밋밋한' 직구를 받아친 것이었다.
6일 로스앤젤레스 에인절스전에서 나온 시범경기 세 번째 안타는 2루 땅볼을 친 뒤 빠른 발로 만든 '내야 안타'였다.
그러나 김혜성은 최근 조금씩 '희망'을 발견하고 있다.
그는 8일 시카고 화이트삭스전에서 150㎞ 직구를 공략해 좌전 안타를 쳤고, 10일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전에서도 156㎞ 직구를 받아쳐 중전 안타를 생산했다
11일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전에서도 154㎞ 싱킹 패스트볼을 강하게 밀어 쳐 3루 옆을 스쳐 가는 안타를 터뜨렸다.
김혜성은 조금씩 MLB의 시속 150㎞대 강속구를 눈에 익히고 있다.
◇ 강속구 공략 못 하면 MLB 생존 실패…차원이 다른 정규시즌
물론 시범경기와 정규리그는 차원이 다르다.
김혜성은 정규시즌이 시작되면 KBO리그에서 볼 수 없었던 트리플A '준 빅리거' 투수들의 강속구와 씨름해야 한다.
미국 야구는 최근 다양한 시스템과 훈련 장비로 '구속 혁명'을 일으켰다.
지난해 MLB 사무국이 발표한 투수 부상 연구 분석 자료에 따르면, 2024시즌 MLB 직구 평균 구속은 시속 151.6㎞로, 2008년 146.6㎞보다 5㎞가 빨라졌다.
특히 리그에서 나온 100마일(160.9㎞) 이상의 공은 2008년 214개에서 지난해 3천880개로 폭증했다.
최근 미국 야구에선 빠르고 많이 회전하는 공을 던지기 위해 다양한 훈련 장비와 프로그램, 시스템이 개발됐고, 이에 따라 MLB의 평균 구속이 급격하게 증가했다.
김혜성은 KBO리그에서 경험하지 못했던 엄청난 속도의 강속구를 이겨내야 한다.
왼손 투수 대처 능력도 큰 숙제다. 김혜성은 시범경기에서 6개의 안타를 모두 오른손 투수를 상대로 기록했다.
왼손 투수를 상대로는 6타수 무안타 삼진 3개로 부진했다.
KBO리그 시절 김혜성의 타격 성적은 상대 투수 유형에 따라 갈리진 않았다.
그러나 KBO리그에선 좌타자 몸쪽으로 150㎞대 강속구를 던질 수 있는 좌완 투수가 드물지만, MLB에선 차고 넘친다.
유형과 구속, 구위가 모두 생소하다.
김혜성이 마이너리그에서 풀어가야 할 숙제다.
KBO 3할 타자 김혜성, 너무 높았던 MLB 강속구 장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