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민의 전기차 생활문화] 충전구역의 주인은 전기차가 아니라 '충전'이다
전기차 충전구역에 전기차가 세워져 있다. 그런데 충전은 하지 않는다. 충전을 마친 차량은 케이블을 꽂은 채 그대로 있고, 정작 충전이 필요한 사람은 기다린다. 전기차가 늘어나면서 이런 장면도 낯설지 않게 됐다.
산업통상부는 지난 8월 20일 「환경친화적 자동차의 개발 및 보급 촉진에 관한 법률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충전시설을 이용하지 않으면서 충전구역에 주차한 전기차도 과태료 대상에 포함하고, 충전구역 밖에서 충전을 마친 뒤에도 케이블을 분리하지 않아 다른 사람의 충전을 막는 행위도 규제하려는 내용이다. 아파트에 허용되던 내연기관차의 병행 주차구역을 업무시설과 기숙사 등으로 확대하는 내용도 담겼다. 의견수렴은 9월 30일까지다.
문제의식에는 공감한다. 충전구역은 전기차를 샀다는 이유만으로 얻는 전용 주차면이 아니다. 실제 충전이 필요한 사람이 사용해야 하는 공간이다.
실제로 지난 4월 법제처는 현행 규정상 전기차가 충전을 하지 않더라도 급속·완속 충전구역에서 정해진 제한 시간을 넘기지 않았다면 충전방해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해석했다. 이번 개정안은 이러한 제도적 빈틈을 메우려는 성격이 강하다.
그러나 여기서 한 가지 고민이 필요하다. 생활 속 문제 하나가 생길 때마다 조건과 예외를 하나씩 덧붙이다 보면 법은 점점 복잡해진다. 규정이 촘촘해질수록 새로운 예외가 생기고, 그 예외를 설명하기 위한 또 다른 규정이 필요해진다. 이용자는 무엇이 옳은 지보다 '어디까지는 과태료가 아닌지'를 먼저 찾게 될 수도 있다.
더구나 전기차 충전은 앞으로 더 복잡해진다. 충전기에 연결했다고 반드시 그 순간 전류가 흘러야 하는 것은 아니다. 전력 부하가 낮은 시간이나 재생에너지가 풍부한 시간에 맞춰 충전하는 예약충전과 스마트충전을 활용하는 방안까지 확대가 준비되고 있다. 따라서 '현재 전기가 흐르고 있는가'를 기준으로 충전 여부를 판단하는 방식은 곧 다가올 미래의 충전환경과 맞지 않는다.
나는 기준을 더 단순하게 만들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충전구역의 주인은 전기차가 아니라 '충전'이다. 다만 같은 충전구역이라도 급속과 완속의 시간은 다르게 흘러간다. 급속충전은 짧은 시간에 필요한 전력을 보충하고 다음 이용자에게 자리를 넘겨주는 것이 기본이다. 따라서 충전하지 않는 차량의 주차는 엄격하게 제한하고, 충전이 끝나면 신속하게 비우도록 하는 것이 맞다. 급속의 핵심은 회전이다.
완속 충전은 다르다. 집이나 회사, 숙박시설처럼 어차피 몇 시간 머무르는 주차시간을 충전에 활용한다. 예약충전이나 전력부하에 따른 충전제어가 확대되면 케이블을 연결해 두고도 일정 시간 전류가 흐르지 않는 것이 정상적인 이용일 수 있다. 이곳까지 '지금 충전하고 있느냐'라는 동일한 잣대로 단속하면 오히려 좋은 충전 습관을 방해할 수 있다. 완속의 핵심은 주차시간을 이용해 충전 기회를 효율적으로 나누는 것이다.
결국 원칙은 어렵지 않다. 급속은 충전하지 않으면 비우고, 완속은 머무는 동안 필요한 충전을 하고 서로의 충전 기회를 나누는 것. 법이 모든 충전기의 통신상태와 예약 여부까지 일일이 판별하려 할 필요는 없다. 충전방해의 큰 원칙은 단순하게 두고, 급속과 완속의 서로 다른 이용방식은 시설 특성에 맞는 시간기준과 운영규칙으로 풀어가는 편이 현실적이다. 기술이 발전하면 사업자의 충전정보와 알림, 스마트제어 같은 서비스가 그 질서를 더 정교하게 도울 수 있다. 법이 기술보다 앞서 모든 예외를 정의하려다 다시 새로운 사각지대를 만들어서는 안 된다.
병행 주차 확대도 신중해야 한다. 같은 개정안에서 한쪽으로는 '충전하지 않는 전기차는 충전구역에서 나가라'고 하면서, 다른 한쪽에서는 주차난을 이유로 내연기관차의 충전구역 이용을 넓힌다면 이용자 입장에서는 기준이 다시 모호해질 수 있다. 정부가 제시한 주차난 완화의 취지는 이해하지만, 충전권과 주차권의 갈등을 예외 조항으로 봉합하기보다 기존 주차면 어디에서든 필요할 때 충전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더 근본적인 방향이다.
과금형 콘센트, 공유형 충전기, 천장형 케이블, 부하분산 충전처럼 하나의 충전기가 하나의 전용주차면을 반드시 독점하지 않아도 되는 방식은 이미 다양해지고 있다. 결국 충전면을 둘러싼 갈등을 줄이는 가장 좋은 방법은 충전면을 놓고 서로 싸우게 하는 것이 아니라 충전할 수 있는 주차면 자체를 늘리는 것이다.
전기차 100만 대 시대에는 법도 생활도 조금 더 단순하고 명확해져야 한다. 차지(Charge)할 때만 차지하기. 충전할 때는 당당하게 사용하고, 충전이 끝나면 다음 사람에게 내어주는 것. 전기차든 내연기관차든 누구의 특권도 아닌, 충전이 필요한 사람을 위한 공간이라는 원칙만 분명하면 된다. 법이 해야 할 일은 사람들에게 더 많은 금지사항을 외우게 하는 것이 아니다. 누구나 이해하고 지킬 수 있는 하나의 질서를 만드는 일이다. 글/조현민 이볼루션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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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민
전기차 생활문화 기획자
㈜이볼루션 대표
『제4의 공간』 저자
관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