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일강의 지배자 이집트, 아스완 댐 완성 [김정한의 역사&오늘]
(서울=뉴스1) 김정한 기자 =

1970년 7월 21일, 이집트 현대사의 흐름을 바꾼 거대한 이정표가 세워졌다. 나일강의 거친 범람을 통제하고 국가 근대화를 이룩하기 위해 추진된 '아스완 하이 댐' 공사가 착공 10년 만에 마침내 최종 완공된 날이다.
이집트에게 나일강은 축복인 동시에 재앙이었다. 매년 반복되는 주기적인 홍수와 가뭄은 농업 생산량을 널뛰게 만들었다. 전환점은 1952년이었다. 혁명으로 정권을 잡은 가말 압델 나세르 대통령은 나일강의 수량을 완전히 통제하겠다는 야심 찬 계획을 세웠다. 댐을 통해 농지를 확장하고, 대규모 수력 발전으로 공업화를 이뤄 빈곤에서 탈출하겠다는 전략이었다.
하지만 초기 자금을 지원하기로 했던 미국과 영국이 이집트의 친소 중립 외교 노선에 반발, 1956년 자금 지원 계획을 전격 취소했다. 이에 분노한 나세르 대통령은 수에즈 운하 국유화를 선언했고, 이는 곧바로 제2차 중동전쟁(수에즈 위기)으로 이어졌다. 서구 열강의 압박 속에 고립된 이집트가 손을 잡은 것은 소련이었다. 소련은 막대한 재정 지원과 함께 수백 명의 엔지니어, 중장비를 투입했다.
1960년 1월 첫 삽을 뜬 이래 공사는 밤낮없이 진행됐다. 특히 아부 심벨 신전 등 수몰 위기에 처한 고대 누비아 유적을 유네스코와 함께 통째로 이전하는 전대미문의 문화재 구출 작전이 병행되기도 했다.
10년의 사투 끝에 들어선 아스완 하이 댐은 이집트에 다각적인 풍요를 가져다줬다. 나일강의 유량을 상시 조절할 수 있게 되면서 농업 생산량은 30% 이상 급증했다. 또한 댐에 설치된 12대의 발전기가 생산하는 전력은 당시 이집트 전체 수요의 절반을 충당했다.
무엇보다 서구 열강의 방해를 이겨내고 이룩한 이 거대한 성과는 아랍 민족주의의 위대한 승리이자 이집트 주권의 상징으로 우뚝 섰다. 인간의 힘으로 나일강을 길들인 아스완 하이 댐은 빈곤과 낙후에 시달리던 이집트를 한층 도약시키는 결정적 발판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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