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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은 있는데 살 사람이 없어요'…정부 첫 고객 프로젝트 탄생 비화

등급아이콘 레벨아이콘 관리자 0 21 06:41

(서울=뉴스1) 이재상 기자 =

정부 첫 실증 구매 프로젝트에 이름을 올린 사족보행 로봇. (중기부 제공)

기술은 있는데 첫 고객이 없습니다.
지난해 10월 중소벤처기업부가 개최한 AX(인공지능 전환) 스타트업 현장 간담회에서 AI와 로봇 등 신산업 스타트업 대표들이 가장 많이 털어놓은 고민이다. 연구개발(R&D)에는 성공했지만, 제품을 처음 사주거나 현장에서 실증해 줄 고객이 없어 사업화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는 하소연이었다.

19일 중기부에 따르면 이 같은 현장의 목소리에서 출발한 '정부 첫 실증·구매 프로젝트'는 최근 열린 공무원 특별성과 정기포상 정책평가회에서 최우수상을 받았다. 단순히 새로운 지원사업을 만든 것이 아니라 정부가 스타트업의 '첫 고객'이 되는 새로운 지원 모델을 제시했다는 점이 높은 평가를 받았다.

신산업 스타트업들이 겪는 어려움은 분명했다. AI와 로봇, 드론 등 기술력은 갖췄지만 실제 제품을 검증할 실증 기회가 부족했다. 어렵게 실증을 마쳐도 구매로 이어질 가능성은 낮았고, 해외 진출 과정에서는 공공기관 납품 실적이나 실증 레퍼런스를 요구받지만 이를 확보하지 못해 계약이 무산되는 사례도 적지 않았다.

공공기관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혁신기술을 도입하고 싶어도 실증 비용 부담이 컸고, 구매 담당자는 감사 부담과 복잡한 내부 절차 때문에 스타트업 제품을 적극 도입하기 어려웠다. 실증 제품을 곧바로 구매로 연결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도 부족했다.

중기부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난해 10월 AX 스타트업 간담회 이후 곧바로 프로젝트 기획에 착수했다.

정부 첫 실증 구매 프로젝트 실증 현장의 모습. 익수자 수중 수상 통합 수색 기술 로봇. (중기부 제공)

그러나 시작부터 순탄하지는 않았다. 정부 기관이 스타트업 제품을 실증하고 구매까지 연결하는 방식은 기존 제도에 없던 모델이었기 때문이다. 실무진 사이에서도 "현실적으로 쉽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이 적지 않았고, 조달청과도 수개월에 걸쳐 제도 개선과 역할 분담을 논의해야 했다.

박종선 신산업기술창업과 사무관을 비롯한 실무진은 창업진흥원, 조달청과 함께 경찰청, 소방청, 국가유산청, 해양경찰청 등 국민 생활과 밀접한 기관들을 직접 찾아다니며 실증 수요를 하나씩 발굴했다. 여러 부처와 공공기관을 오가며 협의를 이어간 끝에 올해 4월 국무회의에서 '정부 첫 실증·구매 프로젝트'가 공식 발표됐다.

프로젝트의 핵심은 정부가 스타트업의 첫 번째 고객이 되는 것이다.

기존에는 연구개발과 공공실증, 혁신제품 지정, 조달청 시범구매, 해외실증이 각각 별도 사업으로 운영됐다. 이번 프로젝트는 이를 하나의 성장 사다리로 연결해 R&D→공공실증→혁신제품 지정→조달청 시범구매→해외실증으로 이어지는 전주기 지원체계를 구축했다.

정부가 먼저 기술을 검증하고 공공 구매 실적을 만들어주면 이를 바탕으로 민간시장과 해외시장 진출까지 이어질 수 있도록 정책 구조를 바꾼 것이다.

성과도 하나둘 가시화되고 있다.

정부 첫 실증·구매 프로젝트의 첫 번째 무대는 로봇 분야였다. 경찰청과 국가유산청, 해양경찰청, 서울시 소방재난본부, 육군 등 5개 기관이 실증 수요기관으로 참여했다. 공모에는 31개 스타트업이 신청했고, 이 가운데 13개 기업이 최종 선정돼 실제 공공 현장에서 기술을 검증받을 기회를 얻었다.

대표적으로 경찰청은 산악 구조 현장에서 활용할 사족보행 로봇과 수상 드론 로봇 실증을 추진한다. 국가유산청은 문화유산 관리 분야에서 첨단기술 적용 가능성을 검증하고, 해양경찰청은 해양 환경에서 활용할 신기술 실증을 진행한다. 육군도 오는 10월부터 군 작전 환경에서 관련 기술을 시험할 예정이다.

그동안 기술력을 인정받고도 '실증 실적이 없어 구매할 수 없다'는 벽에 막혔던 스타트업들이 정부를 첫 고객으로 확보하며 공공 레퍼런스를 쌓기 시작한 것이다.

정부 첫 실증 구매 프로젝트 실증 현장 사진. 군 작전 환경에서 사용 가능한 기술 등이 활용될 전망이다. (중기부 제공)

사업은 스마트시티 분야로도 확대됐다.

현재 진행 중인 2차 프로젝트에는 기상청과 한국전력, 한국도로공사, 한국토지주택공사(LH), 세종시 등 16개 중앙부처와 공공기관, 지방자치단체가 참여해 28개 실증과제를 발굴했다.

기상청은 집중호우 등 재난에 대비한 지하주차장 자동제어 AI 시스템을 실증하고, 한국도로공사는 터널 및 지하공간 건설안전 스마트 중계 로봇을 시험한다.

LH는 버스정류장에서 청각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원활하게 소통할 수 있는 수어 기반 AI 시스템을 검증하고, 주택관리공단은 노후 공동주택 화재를 조기에 감지하는 자율드론 실증을 추진한다.

중기부는 올해 실증기업 40개 사와 참여 공공기관 10곳을 시작으로 오는 2030년까지 실증기업 300개 사, 참여 공공기관 70곳으로 사업을 확대할 계획이다.

중기부 관계자는 "이번 정책은 중기부와 창업진흥원, 조달청 등 관계기관이 협업해 현장의 애로를 해결하기 위해 마련한 것"이라며 "초기에는 실현 가능성에 대한 우려도 있었지만 제도를 하나씩 보완하며 추진해 왔다"고 말했다.

이어 "정부가 스타트업의 첫 고객이 돼 공공시장 진입의 마중물 역할을 하고, 이를 기반으로 민간과 해외시장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을 지속 확대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지난 2월 서울 강남구 글로벌스타트업센터에서 열린 ‘OpenData X AI 챌린지 스타트업 간담회'. (중소벤처기업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2026.2.12 ⓒ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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