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핑 적발 전력'에도 응원 보냈는데...'두산서 봉인해제' 김재환의 결정에 팬들은 왜 분노하나

[SPORTALKOREA] 오상진 기자= 규정을 위반하지는 않았다. 에이전트는 영리했고 구단은 방심했다. 그러나 '편법 논란'과 별개로 두산 베어스 팬들이 느낄 상실감과 배신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두산은 "25일 외야수 김재환과 투수 홍건희, 외국인 선수 콜어빈등 6명을 보류선수명단에서 제외했다"고 지난 26일 깜짝 소식을 전했다.
구단은 "2021년 12월 김재환과 프리에이전트(FA) 계약 당시 ‘4년 계약이 끝난 2025시즌 뒤 구단과 우선 협상을 진행하고, 합의점을 찾지 못하면 자유계약선수로 풀어준다’는 내용의 옵션을 포함했다"라는 사실을 뒤늦게 밝히며 "보류선수명단 제출 시한인 25일 저녁까지 협상을 이어갔으나 이견을 좁히지 못해 김재환을 보류선수명단에서 제외했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김재환은 지난 8일 KBO가 공시한 2026 FA 승인 선수 명단에서 빠져 있었다. 올 시즌 103경기 타율 0.241 13홈런 50타점 OPS 0.758로 'FA로이드' 효과를 보지 못한 그는 'FA 재수'를 선택한 것처럼 보였다.
한 번에 많은 내부 FA가 풀린 점, 외부 FA 영입을 노리는 두산 구단의 사정을 고려한 선택으로 보는 시선도 있었다. 비FA 다년 계약을 통한 잔류라는 선택지도 있었다. 여러 정황으로 볼 때 '프랜차이즈 스타' 김재환이 두산을 떠날 확률은 그리 높지 않아 보였다.

낭만은 없었다. 김재환은 실리를 추구했다. 베테랑 타자들의 몸값이 치솟는 시장 상황을 고려했을 때 두산 잔류보다 더 많은 몸값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계산적인 선택이었다. FA를 신청했다면 'B등급' 꼬리표가 붙어 부담스러운 매물이 됐겠지만, 옵션 발동으로 완전한 자유의 몸이 됐기 때문에 FA 보상 규정을 피할 수 있게 됐다.
'편법 논란'이 있긴 했으나 계산기를 두드려봤을 때 충분히 해볼 만한 시도였다. 하지만 이렇게 큰 역풍이 불 것은 예상하지 못한 듯하다. 논란의 주인공이 김재환이었기에 두산 팬들이 느낀 실망감은 더 클 수밖에 없었다.
2008 신인 드래프트 2차 1라운드 4순위로 두산 유니폼을 입은 김재환은 입단 초 기대만큼 잠재력을 터뜨리지는 못했다. 2011년 10월에는 야구월드컵 출전 과정에서 금지약물 복용이 적발돼 10경기 출장 정지 징계를 받으며 팬들에게 실망을 안겼다.
김재환은 2016년 타율 0.325 37홈런 124타점 OPS 1.035의 놀라운 성적을 기록하며 알을 깨고 나왔다. '타격 기계' 김현수의 미국 진출로 생긴 공백을 완벽히 메운 김재환의 각성에 두산 팬들은 열광했다.

2017년(타율 0.340 35홈런 115타점)과 2018년(타율 0.334 44홈런 133타점)까지 3시즌 연속 타율 3할-30홈런-100타점의 활약이 이어졌다. '금지약물 전력'이라는 꼬리표가 붙은 그의 활약에 타 구단 팬들로부터 비난의 화살이 쏟아졌지만, 두산 팬들은 그를 감쌌다.
2018년 정규시즌 MVP를 차지한 김재환은 "내가 짊어지고 가야 할 책임을 더 무겁게 가지고 가겠다. 남은 인생 성실하게 살며 좋은 모습만 보이도록 하겠다. 많은 분이 응원해 주시는데, 그분들에게 누가 되지 않도록 하겠다"는 소감을 밝히기도 했다. 한미 일본 프로야구를 통틀어 금지약물 복용 전력을 안고 MVP를 수상한 최초의 선수가 됐지만, 꾸준한 노력의 결과라며 그를 두둔하는 이도 적지 않았다.

김재환은 2018년 정점을 찍은 뒤 다소 주춤했다. 그래도 꾸준히 중심타선에서 홈런과 타점 생산 능력을 보여주며 2021년 시즌 종료 후 4년 총액 115억 원의 대형 FA 계약을 맺는 데 성공했다. 많은 간판선수가 FA로 팀을 떠나는 가운데 잔류를 선택한 김재환에게 두산 팬들은 더 많은 애정을 쏟았다.
FA 계약 이후 4년간 보여준 퍼포먼스는 아쉬웠다. 2022년(23홈런)과 2024년(29홈런) 두 차례 20홈런 이상을 기록했으나 타율은 내내 2할대에 머물렀다. 부진한 성적에 그를 향한 두산 팬들의 '애정'은 '애증'으로 변해갔다.
이러한 상황에서 두 번째 FA 자격을 얻은 김재환이 자격 신청을 포기하자 두산 팬들은 그의 선택을 '구단을 향한 충성심', '잔류 의지' 등으로 바라보며 지지를 보냈다.

믿음이 컸던 만큼 배신감은 더 컸다. 타이밍도 좋지 않았다. FA 시장에 적극적으로 뛰어든 두산은 유격수 최대어 박찬호(4년 최대 80억 원) 영입에 성공했지만, 관심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던 강백호, 김현수를 연이어 놓쳤다.
타선의 무게감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김재환의 잔류가 필요했다. 그러나 김재환은 두산의 제안을 거절했다. 올해 연봉이 10억 원에 달했던 그는 18년간 몸담았던 팀에 보상금이나 보상선수, 그 어느 것도 남기지 않은 채 자유의 몸이 되는 것을 선택했다.
실리를 택한 김재환은 뜨거운 가슴이 아닌 차가운 머리로 결정을 내렸다. 그 결과 김재환을 향한 팬들의 애정은 싸늘하게 식었고 분노는 뜨겁게 타오르고 있다.

사진=뉴시스, 두산 베어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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