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드롱 대기록도 넘었다' 당구 女帝, 남자부에도 도전하나 "물 흐리지 않을까요?"
도무지 막을 수가 없다. '당구 여제' 김가영(41∙하나카드)이 또 다시 프로당구(PBA)의 역사를 새로 썼다. 자신의 기록을 계속 갈아치우고 있다.
김가영은 8일 강원도 정선군 하이원 그랜드호텔 컨벤션타워에서 열린 '하이원리조트 PBA 챔피언십 2024' 여자부 결승에서 김보미(NH농협카드)를 세트 스코어 4 대 2(11:0, 11:6, 11:4, 3:11, 9:11, 11:1)로 눌렀다. 최장 7연속 득점을 앞세워 이닝 평균 1.366점으로 김보미보다 0.5점 이상 높은 압도적인 경기력으로 정상에 올랐다.
남녀부 통틀어 PBA 우승 기록을 또 경신했다. 김가영은 통산 12번째 우승으로 남자부 프레드릭 쿠드롱(벨기에)의 8회를 이미 넘어 최다 기록을 다시 썼다.
최장 연속 우승 기록도 늘렸다. 김가영은 올 시즌 3차 투어인 '2024 에스와이 바자르 하노이 오픈'부터 무려 5회 연속 정상에 등극했다. 쿠드롱이 2021-22시즌 세운 4회 연속 우승을 넘어섰다.
개인 투어 연승 신기록 행진도 이어졌다. 김가영은 3차 투어부터 30연승을 질주하고 있는데 2위 기록은 역시 쿠드롱의 23연승을 훌쩍 뛰어넘었다.
여자부 상금과 관련한 새 역사도 썼다. 김가영은 이날 우승 상금 4000만 원을 추가해 여자부 최초로 단일 시즌 상금 2억 원(2억 900만 원)을 돌파했다. 통산 상금도 5억 4180만 원으로 1위다.
물이 오를 대로 올랐다. 김가영은 이날 결승 1세트부터 3이닝에서 6점을 몰아치더니 4이닝에서는 5점을 채우며 11 대 0으로 기선을 제압했다. 2세트에서도 6 대 6으로 맞선 5이닝 2점, 6이닝 1점으로 승기를 잡았고, 9이닝째 2점을 마저 채웠다. 3이닝에서는 무려 7점을 퍼부으며 6이닝 만에 11 대 4로 이겼다.
김가영의 무서운 기세에 눌렸던 김보미도 반격했다. 벼랑에 몰린 4세트 큐가 풀린 듯 8이닝째 뱅크 샷을 포함해 3점을 내며 11 대 3으로 만회했다. 5세트에서도 8이닝 만에 11 대 9로 이겨 한 세트 차까지 추격했다.
하지만 김가영이 다시 집중력을 끌어올렸다. 6세트 3 대 1로 앞선 6이닝에서 폭풍 6점을 올리며 9 대 1까지 달아났다. 7이닝에서 김가영은 침착하게 옆돌리기와 대회전을 꽂으며 우승을 확정했다.
김가영은 우승 두 "경기 중반부에 다소 위태위태했는데 위기를 극복하고 우승해서 기쁘다"면서 "중반부터 해이해진 건 다소 아쉽고, 실수한 뒤 집중력이 다소 떨어졌지 그래도 점점 발전하고 있는 거 같아서 만족할 만한 투어였다"고 소감을 밝혔다. 5연속 우승에 대해서는 "운이 좋았다"고 웃으면서 "물 흐르듯이 5연속 우승한 게 아니고, 위기도 굉장히 많았는데 내 노력으로 위기를 극복한 순간도
있겠지만 운도 분명히 있었다"고 겸손한 자세를 보였다.
여자부를 평정한 훈련 비결은 무엇일까. 김가영은 "공이 굴러가는 원리를 찾는 연구와 훈련에 집중한다"면서 "연습 경기보다는 훈련에 시간을 더 많이 투자한다"고 밝혔다. 이어 "경기에 굶주리게 하려는 복안도 있는데 경기를 많이 소화하면 경기에 젖는다"면서 "훈련을 많이 하다가 경기를 한번씩 소화하면 더 집중할 수 있다"고 귀띔했다.
더 이상 적수가 없으니 남자부에 도전할 의향이 있을까. 이에 김가영은 "전혀 없다"고 손사래를 쳤다. 이어 "남자부는 애버리지 1.5점 이상의 선수들이 경쟁하는데 1.2~1.3점을 기록하는 선수가 경쟁하겠다는 건 옳지 않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도 김가영은 "정말 열심히 훈련해서 행여나 애버리지 1.5점을 기록한다면 남자부의 물을 흐리는 것은 아닐 것"이라고 여지를 남겼다. 김가영은 올 시즌 이닝 평균 1.22점으로 여자부 단연 1위를 달린다. 세계캐롬연맹(UMB) 여자 3쿠션 세계 랭킹 1위 테레스 크롬펜하우어(네덜란드)는 종종 남자부 경기에도 출전한다.
후배에 대한 애정어린 조언도 잊지 않았다. 김보미에 대해 김가영은 "0 대 3까지 밀려도 집중력을 잃지 않더라. 이전보다 침착하게 경기하는 게 좋았다"면서 "결승전까지 올라오면서 나와 함께 라운드 애버리지 1, 2등을 다투는데 팀 리그에서도 잘하고 요주의 인물인 동시에 정말 예쁜 후배"라고 미소를 지었다.
김보미는 지난 시즌 왕중왕전인 SK렌터카 제주특별자치도 월드 챔피언십 결승에 이어 이번에도 김가영을 넘지 못했다. 결승 뒤 김가영과 김보미는 서로 안아주며 축하와 격려를 나눴다. 김보미는 "2024-25시즌 내내 크게 부진했는데 마지막 투어에서 결승에 올라 32명이 겨루는 왕중왕전에 갈 수 있어 뿌듯하다"면서 "솔직히 결승전에서 이기기 힘든 경기력이었고, 김가영 선수보다 준비가 부족했다는 것을 받아들인다"고 말했다.
이제 당구 여제는 무엇을 이루고 싶을까. 포켓볼로도 세계 정상에 올랐던 김가영은 "3쿠션을 시작할 때는 목표는 당시 여자 선수 중에는 없던 애버리지 1.0이었다"면서 "점차 애버리지 1.2까지 목표를 높였다"고 운을 뗐다 .이어 "애버리지 2.0 같은 수치는 너무 터무니없지 않고, 할 수 있는 곳까지 열심히 달려보는 것"이라면서 "내게 남은 시간이 적다고 말한 것도 고삐를 당기기 위한 자기 암시"라고 힘주어 말했다.
CBS노컷뉴스 임종률 기자 [email protected]
'쿠드롱 대기록도 넘었다' 당구 女帝, 남자부에도 도전하나 "물 흐리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