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판 맘대로 할 거면 피치클락은 왜 있나…‘투수 25초·타자 8초’는 보장된 시간, 규정과 모순되는 ‘재량권’ 손 봐야

[SPORTALKOREA] 한휘 기자= 심판 재량으로 무력화할 수 있는 피치클락은 ‘반쪽짜리’다.
18일 대전 한화생명볼파크에서 2025 신한 SOL뱅크 KBO 플레이오프 1차전 한화 이글스와 삼성 라이온즈의 경기가 열렸다. 7년 만에 가을야구 무대를 밟은 한화와 준플레이오프 ‘업셋’을 완성한 삼성의 맞대결. 수많은 야구팬의 시선이 쏠렸다.
그런데 고개를 갸웃하게 하는 장면이 있었다. 한화가 5-3으로 앞선 3회 초, 무사 1, 3루 기회에서 구자욱이 코디 폰세를 상대로 타석에 섰다. 1루 주자가 있는 상황에서 폰세는 주자까지 신경 썼고, 평소 이상으로 투구 간격을 길게 가져갔다.

이를 두고 구자욱이 고의적인 지연 아니냐며 불만을 드러냈다. 반대로 폰세는 아직 피치클락 시간이 남았다고 항변했다. 김경문 한화 감독이 벤치에서 나와 상황을 듣고 들어가기도 했다.
곧이어 폰세가 다시 한번 공을 오래 쥐고 있자, 박기택 주심이 상황을 끊고 폰세에게 직접 주의를 주기도 했다. 그러고 나서야 폰세의 2구가 던져졌다. 일련의 과정으로 인하여 경기 템포가 상당히 늦춰졌다.

구자욱의 불만과 폰세의 항변, 그리고 박기택 주심의 주의 조치. 어떤 것이 합당한 것일까. 가장 핵심적인 것은 심판이 폰세에게 내린 주의 조치다. 이는 올해 정규시즌 개막을 앞두고 추가된 시행 세칙을 근거로 한다.
KBO는 지난 3월 20일 김병주 KBO 심판위원장, 진철훈 기록위원장과 10개 구단 감독의 간담회를 갖고 투수가 피치클락 잔여 시간을 이용해 고의적으로 경기를 지연시키면 주의 또는 경고 조치를 줄 수 있도록 세칙을 추가했다.
그러면서 KBO는 “‘불필요한 경기 시간 단축’이라는 도입 목적과 기존 스피드업 규정에 따라 투수가 고의적으로 경기를 지연시킨다고 심판이 판단하면 주의 또는 경고 조치가 가능하다”라고 설명했다.

문제는 이 세칙 자체다. 피치클락은 엄연히 투수와 타자에게 규정된 시간을 부여하고 해당 시간 내에 동작을 마치도록 제한한다. 이를 달리 말하면 시간만 지킨다면 규정 위반으로 볼 소지가 없다는 이야기다.
투수는 주자가 없을 때 20초, 주자가 있을 때 25초의 투구 시간을 가진다. 인터벌을 길게 가져가서 타자나 주자의 타이밍을 흔들든 말든, 이 시간만 지키면 문제가 없어야 정상이다. 엄연히 이 시간은 투수에게 주어진 시간이다.
반대로 타자가 타격 준비를 완료하기까지 주어진 8초 역시 타자에게 주어진 시간이다. 의도적으로 루틴을 길게 늘여 8초를 꽉꽉 채우건 말건 이 역시 투수를 흔드는 타자의 ‘전략’이지 반칙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심판이 재량으로 지연을 판단해 주의나 경고를 줄 수 있다는 추가 세칙은 이와 정면충돌한다. 투수가 20초, 혹은 25초의 시간을 온전히 사용해 펼칠 수 있는 일종의 전략을 심판이 독단적으로 가로막을 수 있다는 뜻이다.
야구가 아닌 일상 상황으로 생각해 보자. 수행에 약 30분이 소모되는 특정 업무를 오후 3시까지 완료해야 한다. 그렇다면 3시 전에 무엇을 하던 늦지 않게 일만 마치면 문제가 없다. 그런데 갑자기 오후 2시에 처리가 늦다며 지적이 날아든 셈이다. 불합리하다. 이번 일도 마찬가지다.
만약 KBO의 설명대로 ‘경기 시간 단축’을 목적으로 지연 행위를 막고자 한다면, 애초에 피치클락 시간을 줄이면 될 일이다. 메이저리그(MLB)처럼 주자가 없을 때 15초, 있을 때 18초로 제한 시간 자체를 줄여서 해결할 일이다. 논란의 여지만 키우는 ‘재량권’으로 ‘땜질’할 일이 아니다.

결국 근본적인 해결책 대신 애매한 미봉책을 택한 결과 모든 팬의 시선이 집중된 포스트시즌에서 또다시 문제가 발생했다. 심지어 ‘시간 단축’이라는 목적과 달리 항의와 항변, 주의가 오가는 과정에서 시간이 대폭 지연됐다.
규정은 확실해야 한다. 기껏 피치클락을 도입해 ‘시간’이라는 기준점을 만들었다면, 이에 대한 문제 해결 역시 ‘시간’이라는 기준점을 만져서 진행해야 한다. 이 기준을 무력화할 수 있는 ‘재량권’은 오히려 불필요한 논쟁만 야기할 수 있다. 지금의 피치클락은 ‘반쪽짜리’다. 시즌 후 개선이 필요하다.

사진=뉴스1, 뉴시스, 삼성 라이온즈, 한화 이글스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