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발 ‘0이닝 강판’, 그런데 이겼다? 알고 보니 교체가 정답이었네…제대로 통한 승부수, 필라델피아 ‘13-0’ 대승 이끌었다

[SPORTALKOREA] 한휘 기자= 선발 투수의 ‘0이닝 강판’이 승리를 위한 해답일 줄 누가 알았을까.
메이저리그(MLB) 필라델피아 필리스는 28일(이하 한국시각)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의 트루이스트 파크에서 열린 2025 MLB 정규시즌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와의 경기에서 13-0 대승을 거뒀다.
표면적인 지표만 보면 평범하게 투타 양면에서 애틀랜타를 압도한 경기다. 그런데 특이한 기록이 하나 있다. 이날 필라델피아는 선발 투수로 우완 믹 에이블을 예고했다. 기록지에는 0이닝 0구의 기록만 남았다. 경기 시작과 함께 교체된 것이다.

이유가 있다. 이날 애틀랜타에는 천둥번개를 동반한 강한 비가 쏟아졌다. 하필 경기를 조금 앞두고 내렸다. 양 팀 선발 투수들이 몸을 다 풀어 놓은 상황에서 경기 개시가 지연됐다. 공식 기록상 2시간 19분 늦게 경기가 시작됐다.
이에 필라델피아 롭 톰슨 감독이 과감한 결단을 내렸다. 선발 투수 에이블을 기용하지 않기로 한 것이다. 1회 말 시작과 함께 톰슨 감독은 에이블을 빼고 좌완 불펜 요원인 태너 뱅크스를 마운드에 올렸다.


결과는 성공이었다. 뱅크스는 갑작스러운 등판에도 2이닝을 2피안타 2탈삼진 무실점으로 잘 막았다. 3회부터는 타이후안 워커가 출격해 마찬가지로 2이닝을 실점 없이 정리했다. 5회부터 마운드에 선 알란 랑헬은 남은 5이닝을 6피안타 1볼넷 4탈삼진 무실점으로 홀로 틀어막았다.
톰슨 감독의 결단이 옳은 판단이었음은 상대 마운드를 통해서도 알 수 있었다. 톰슨 감독과 달리 애틀랜타 브라이언 스니커 감독은 선발 투수 브라이스 엘더를 그대로 1회 마운드에 올렸다.

몸이 식은 것이 문제였을까. 엘더는 1회부터 볼넷만 3개를 내주며 선취점을 헌납했다. 이어 2~3회에만 홈런 3개를 얻어맞고 무너졌다. 2이닝 8피안타(3피홈런) 4볼넷 10실점(9자책)이라는 끔찍한 결과와 함께 조기 강판당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애틀랜타는 엘더가 내려간 후 필리스 타선을 비교적 성공적으로 봉쇄했다. 9회 초에 내야수 루크 윌리엄스가 등판해 2실점 한 것을 빼면 11실점 중 1점만이 불펜진에서 나온 것이다. 야구에 만약이란 없다지만, 애틀랜타도 엘더를 포기하고 1회부터 ‘불펜 데이’를 개시했다면 승부의 향방은 달랐을지도 모른다.

참고로 필라델피아는 이 승리로 시즌 48승(34패)째를 거둬 내셔널리그(NL) 동부지구 선두로 치고 나갔다. 애틀랜타는 반대로 시즌 44패(37승)째를 떠안으며 포스트시즌 희망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 양 팀의 대비되는 성적에는 분명 ‘돌발 변수’에 대한 대응 능력도 영향이 있을 것이다.
한편, 에이블은 경기 전에 바뀐 것이 아니라 경기 시작과 함께 교체됐으므로 기록지에 이름이 남았다. 따라서 시즌 6번째 ‘출전’으로는 기록됐다. 다만 투구 없이 마운드를 내려갔기 때문에 ‘등판’은 카운트되지 않았다. 이에 따라 ‘6출전 5등판’이라는 기묘한 기록이 남는다. ‘선발 등판(Game Started)’ 기록은 1회 말 교체 출전한 뱅크스에게 기록됐다.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MLB 유튜브 하이라이트 캡처